북관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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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1592~1598)때 이봉수, 최배천, 지달원, 강문우 등이 북평사 정문부(1565~1624)를 주장으로 추대하여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왜군을 격파한 북관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승정비다.

그후 정문부선생은 역모사건에 연루돼 참혹하게 돌아가셨지만 43년후 억울함이 밝혀직 그의 전공도 서서히 드러나게 됐고 돌아가신지 85년 뒤인 1708년에 함경도 북평사 최창대가 글을 짓고 이명필이 글을 써서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고을주민의 뜻을 모아 건립됐다.

그리고 러·일전쟁 중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의 이게다마사스케 소장이 조상들의 패전기록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여 일본으로 뺏아갔고 그후 일본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신사로 옮겨졌다.

2005년 6월 남과 북이 비반환에 합의하고 일본정부에 요청하여 결국 10월 20일 비를 반환받게 됐다. 반환 당시 비의 높이 187㎝너비 66㎝, 두께13㎝의 몸돌만 남아있었지만 비 해체때 나온 도면을 기초로 받침돌과 지붕돌을 복원했다.

한편 북관대첩비 원본은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으며 북한 국보 제193호 지정돼 있는 것을 문화재청에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해 비문을 탁본하여 복제비를 제작하여 독립기념관과 고궁박물관과 경기도 의정부시 정문부 산소에 그리고 이번에 세워진 충의사 경내의 복제비로 모두 4점이 국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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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부선생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북관대첩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