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사

충의사 이미지

충의사(忠義사)는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충의공(忠毅公)정문부(鄭文孚)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둔 사당(祠堂)이다.

공(公)은 선조 21(158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벼슬길에 나아가 임진왜란 때 북평사(北評事)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함경도를 침략한 왜군을 물리치고 지방반군을 소탕했으며 북방호족을 몰아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북관대첩(北關大捷)을 이루었다. 전쟁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시화(詩禍)에 연류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후에 무죄로 해명되어 좌찬성(左贊成)에 추종되고, 충의(忠毅)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사당은 삼문을 갖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경내(境內)에는 충의공의 일대기와 유물을 전시한 정문부선생 유물전시관, 농포집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藏板閣),강당(講堂)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원래는 귀곡동에 있던 것을 남강댐 숭상공사로 인해 1995년 이곳으로 이건(移建)하였다.

현재 해주정씨 문중에서관리하고 있으며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로 지정되었다. 농포 정문부를 모신 사당은 북한에 창렬사·현충사·청암사(일명 숭렬사)등이 있으나 후손들이 거주하는 진주의 까꼬실에는 종가와 부조묘사당이 있었는데 1970년 가호서원을 세우면서 당시의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충의사」라는 편액을 받았다.